내 사이트 링크

세계 여행
서울 여행
경상도 여행
전라도 여행
강원도 여행
충청도 여행
제주도 여행
경기도 여행

2025년 5월 3일 토요일

(길따라) 순창 녹두장군 전봉준 피체 유적지

=동학 농민운동의 최고 지도자=

2018년 8월에 전북 정읍시에 있는 [전봉준 장군이 살았던 유적지]를 방문한 이후 약4년만에 전봉준 장군(1855~1895)이 체포된 장소가 순창군에 있다고 해서 찾아 갔습니다.

전봉준 장군은 우금치 전투에서 패하고 충청남도 계룡산에 머물자 스님 한 분이 “장군이 재기에 성공하려면 계룡산을 피하고 경천을 피해야 됩니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장군이 자금도 모을 겸 백양사로 내려왔는데, 계속 추격을 당하자 숨어들어 온 곳이 옛 부하였던 정읍출신의 김경천이 살고 있었던 이곳 <피노리>였다고 합니다. 현상금이 나붙자 돈에 눈이 먼 김경천은 전봉준을 밀고했고, 1894년에 전봉준 장군은 체포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피노리 뒤에 있던 산 이름이 <계룡산>이었고 부하의 이름이 <김경천>이었음을 전봉준이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고 합니다.

[주소] 전북 순창군 쌍치면 피노길 65-29







(성지순례) 언양 성당 및 순교자 오상선 묘

오랜 만에 집사람과 함께 울산 울주군에 있는 성지를 순례했습니다.

언양 성당(울산 울주군에 있음) 뒷산으로 올라가면 오상선(1840-1867, 교명미상)의 묘가 있는데, 오상선은 이 지방에서 처음으로 신앙을 받아들인 오한우(1760-1801, 베드로)의 증손자라고 합니다.

오상선의 증조부 오한우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충청도와 경상도 경계 지점에서 피안살수형(백지사형)으로 순교하였으며, 오상선 또한 병인박해(조선 조정에서 가톨릭 교도를 대량 학살한 사건, 1866년)의 여파로 잡혀 언양감옥에 잡혀있다가 백지사형으로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고무재(충북 제천시 청풍면 인근)에 있던 오상선 묘(부인 문화 류씨와의 합장묘)를 부산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의 주관으로 1995년 5월 15일 언양 성당 뒷산으로 옮겨 단장하였다고 합니다.

[참고: 피안살수형(백지사형)] 백지사형이란 교우들의 손을 뒤로 결박하고 상투를 풀어서 결박된 손에 묶어 얼굴을 하늘로 향하게 한 다음 얼굴에 물을 뿜고 그 위에 백지를 여러 겹 붙여 질식사시키는 처형 방법이었다.

[주소] 울산 울주군 언양읍 구교동1길 11






2025년 5월 2일 금요일

(길따라) 예천 장안사를 찾아서...

=비룡이 꿈틀거리는 곳의 사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국태민안을 염원하여 전국 세 곳의 명산에 장안사를 세웠는데, 금강산 장안사, 양산 장안사, 그리고 예천에 있는 비룡산 장안사가 그 하나라고 합니다.

또한 장안사 뒷산에는 <회룡포> 및 <회룡대>가 있으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비경은 눈을 의심할 만큼 신비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습니다.

한편, 장안사 팔각정 안에는 고려시대의 문관이며 재상이었던 이규보(고려시대의 문신 및 문인, 1168~1241)가 장안사에 머물면서 장안사에 대해 쓴 시가 걸려있으며, 이규보는 이곳 장안사에 오래 머물면서 글을 지었으며 만년에는 불교에 귀의했다고 합니다.

[주소] 경북 예천군 용궁면 회룡대길 168










(길따라) 성주 구강재

구강재는 성주 출신의 문신이었던 여희림(1481~1553)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재실이라고 합니다.

여희림은 1517년(중종 12)에 중종의 첫째 아들이었던 복성군의 사부가 된 적이 있었는데, 1533년(중종 28)에 그것이 빌미가 되어 귀양을 갔었다고 합니다.

구강재는 원래 여희림이 아버지 여우창의 시묘살이(부모가 사망했을 때에 자식이 묘 옆에 움막을 짓고 거주하면서 탈상할 때까지 묘소를 돌보는 일)를 하던 장소에 건립하였는데, 아버지의 묏자리가 강에서 놀던 거북이 알을 낳기 위해 오르는 형국이라는 데에서 구강재라는 이름이 연유하였다고 합니다.

[주소] 경북 성주군 금수면 성주로 1037








2025년 5월 1일 목요일

(길따라) 울주 언양읍성(영화루)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에 있는 조선시대 언양현의 읍성이며, 1390년(공양왕 2)에 처음으로 토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1500년(연산군 6)에는 당시 현감이었던 이담룡이 석성으로 넓혀 쌓았다고 합니다.

또한 사방에 문이 설치되었는데 동문은 망월루, 서문은 애일루, 남문은 영화루, 북문은 계건문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언양읍성은 14~15세기 축조 방법과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사이 축성법의 변천을 잘 보여 주는 읍성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주소] 울산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 306-1






(길따라) 순창 낙덕정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상송리에 있는 누각이며, 1975년 2월 5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낙덕정은 조선 인종(1515~1545) 때의 학자 하서 김인후(1510~1560)가 은거하던 곳인데, 그는 당시 척신들인 윤원형·윤임 사이의 정권 다툼을 염려하다가 명종(1534~1567) 때 을사사화(왕위 계승을 둘러싼 외척간의 갈등, 1545)가 일어나자 관직을 사임하고 낙향하였다고 합니다.

낙향 후 낙덕암 주위의 산세를 즐기는 한편 후세들에게 성리학을 가르쳤는데, 후일 이곳에서 훌륭한 인물이 나올 것이라는 그의 예언에 따라 후손이 이곳에 정자를 지었다고 합니다.

[주소]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상송리 49-1






2025년 4월 29일 화요일

(길따라) 군위 사유원

군위에 있는 사유원은 10만평 규모로 조성되어 있는 식물원 혹은 수목원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1)입장료가 1인당 50,000원이며, (2)한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하고, (3)하루에 200명만 입장할 수 있다는 특징으로 인해 무작정 예약을 하고 집사람과 함께 찾아가 보았습니다.

사유원 전체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4-5시간이 소요되는데, 멋진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포토존이 많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주소] 경북 군위군 부계면 치산효령로 1150






(길따라) 영주호 용천루 출렁다리

 영주호를 관통하는 용천루 출렁다리는 아치형의 다리인 용미교 그리고 길이 150m의 현수교 용두교 출렁다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용마루공원에서 바라보는 용미교와 용두교는 너무도 멋진 풍경을 선사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섬과 연결된 용천루 출렁다리를 통해 화려한 조명과 함께 영주호의 야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데, 야경이 훌륭한데 대낮 풍광은 두말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주소] 경북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1401







2025년 4월 28일 월요일

(길따라) 이완용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서

=친일파 및 민족 반역자=

기회주의적 민족 반역자였던 이완용(1858~1926)의 묘는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에 있는 성인봉(254m) 바로 아래의 내산동에 있었는데, 이완용이 묻힌 곳은 [신선이 내려와 춤을 추는 모습을 갖춘 명당자리]였다고 합니다.

또한 내산동은 조선 중종(1488~1544) 때에 왕족이 큰 죄를 짓고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완용의 묘에는 부인도 합장돼 있었고 묘로부터 서북쪽으로 70m 떨어져 있었던 이완용의 아들 항구씨 부부의 묘도 있었는데, 1978년에 이완용의 증손자 이석형(이항구의 삼남 병주의 장남)은 파묘를 하고 유골을 화장하여 마을 앞에 있는 장암천에 흘려보냈다고 합니다.

한편, 이완용의 유골을 화장하여 마을 앞에 있는 장암천에 흘려보냈다는 자료들을 검색하면서 장암천이 흐르는 곳에 있는 [장암교]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장암마을]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장암교] 아래에 흐르는 장암천은 하천이라기 보다는 폭이 매우 좁은 작은 개울이라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었으며, 이런 곳에 유골을 화장하여 흘려보냈다는 것에 대해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유골을 화장한 후에 다른 곳으로 이장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묘 주소]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 산 154-3번지

[장암교 주소]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 210-4







(길따라) 순창 귀래정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1456년(세조 2)에 신숙주(1417년~1475, 조선전기 병조판서, 대사성,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의 아우 신말주(1439∼?, 조선 전기 문신)가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내몰고 제7대 왕위에 오르자 이에 불만을 품고 벼슬에서 물러나 순창으로 낙향하였으며, 자신의 호를 딴 귀래정을 짓고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키면서 은둔생활을 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1975년 2월 5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습니다.

[주소]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538-1

[참고: 귀래정의 유래] 신말주 선생이 친구인 서거정(1420~1488, 조선 전기의 학자)에게 정자의 이름을 지어줄 것을 청하지 중국의 술 시인이며 전원시인으로 정평이 난 도연명(365~427, 중국의 대표적 시인)의 귀거래사에서 연유한 귀래정을 택했음을 말합니다. 그 의미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뜻에서 연유했음을 서거정의 귀래정기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2025년 4월 27일 일요일

(길따라) 창녕 부용정

부용은 연꽃을 의미하며, 부용정은 연꽃이 있는 정자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부용정은 선조 15년(1582)에 한강 정구(1543∼1620) 선생이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정자로, 후에 부용당 성안의(1561∼1629) 선생에게 넘겨주었다고 합니다.

1997년 12월 31일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248호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주소] 경남 창녕군 성산면 곽천대산로 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