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제11시단(사단장 최덕신 준장) 9연대(연대장 오익경 대령) 3대대(대대장 한동석 소령)가 1951년 2월 9일부터 2월 11일까지 거창 주민 719명을 집단 학살하고 시신을 불태웠다는 3개의 장소들을 찾아 갔습니다.
이것은 [적에게 식량과 거처를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곳을 파괴하고 인근 주민을 없앤다]는 백야전사령부(사령관 백선엽 소장)의 견벽청야작전에 따라 진행이 되었는데, 전체 희생자는 719명(청연마을: 84명, 탄량골: 100명, 박산골: 517명, 기타 지역: 18명)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가의 공식 배상 및 보상 법안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여러 차례 유산되거나 지연되어 완벽한 국가 배상 문제는 아직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거창지역 719명의 주민들을 학살한 과정은 아래와 같은데, 참혹했던 현장은 아직도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1) 신원국민학교는 거창 국민을 학살하기 전에 군인들이 신원면 주민들을 집결시켜서 군경 가족과 공비협력자로 분류했던 장소입니다. 또한 현재의 신원초등학교는 1950년대 당시의 신원국민학교와 동일한 학교이자 같은 부지입니다.
(2) 거창 청연마을에서는 1951년 2월 9일에 84명의 주민을 학살하였습니다.
(3) 거창 탄량골에서는 1951년 2월 10일에 가옥을 소탕하면서 피난을 가던 100명의 주민을 집단 학살하고 시신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4) 거창 박산골에서는 1951년 2월 11일에 어린이와 아낙네를 포함하여 517명의 주민을 학살하였습니다. 현재는 [박산골 합동묘역]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