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반정(1506년에 연산군을 몰아내고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으로 연산군(조선 제10대 왕, 1476~1506)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중종(1488~1544)을 도와 유교 정치의 이상향을 실현하는 과감한 개혁 정치를 실시한 조광조(1482-1519, 37세)는 왕도정치의 이상 세계 구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실시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리한 급진정책은 기존 세력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무엇보다 조광조의 강력한 정치적 후견인이 되어야 할 중종 또한 조광조의 열정을 부담스러워하였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결국 역성 혁명을 꾀한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유배를 떠나게 되었는데, 이것이 1519년에 훈구파에 의해 조광조 등의 신진 사류들이 숙청된 [기묘사화]라고 합니다.
기묘사화와 관련해서는 사건의 전개 과정에 이른바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술수가 활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화순으로의 유배 한 달 만에 사약을 받아 조광조는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주소]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 1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