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인 이상화의 형=
조국에서의 독립운동에 한계를 느끼고 1923년 만주로 망명하여 북만주에서 2년간 민족교육을 통한 항일독립운동을 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1932년 4월 29일에 있었던 홍구공원에서의 의거를 위해 윤봉길 의사에게 폭약을 구해주는 등 독립운동에 전념했으며, 1932년에는 흥사단에 가입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1938년는 김구·김규식 등과 더불어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의원 및 외교위원으로 활동하였다고 합니다.
1947년 10월 어머니의 사망소식에 귀국하였으나 귀국 후 40여 일만에 뇌일혈로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주소] 대구광역시 달서구 명천로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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