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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25일 화요일

(길따라) 권율 도원수부 표지석를 찾아서...

-권율 지휘소를 찾아간 이순신 장군-

경상남도 합천군의 [합천경찰서 동부지구대와 초계면사무소 입구의 중간 지점]에 권율 도원수부 터(임진왜란 권율 장군의 합천지역 지휘소)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이곳은 권율 장군이 군영을 설치하고 조선군을 지휘하여 일본군을 막아내던 도원수부(전쟁지휘소) 자리입니다.

1597년 4월 1일에 출옥한 이순신 장군은 권율 도원수의 휘하에서 백의종군하기 위해 이곳에 왔으며 합천군 초계 인근인 모여곡에 거처를 정한 후에 5차례나 권율 장군을 찾아와 전황을 전해 듣고 함께 전략을 수립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곳 합천군 초계면은 가야산맥과 황매산맥, 황강과 낙동강이 어우러져 만든 천혜의 요새지라고 합니다.

[주소]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초계중앙로 45






(길따라) 용탑스님이 쌓은 허굴산 천불천탑

합천의 허굴산(682m)에 있는 천불천탑은 관세음보살 기도 도량이며, 용탑 스님이 산에 흩어져 있는 바위와 돌들을 갈고 다듬어 10여 년에 걸쳐 수많은 탑으로 만든 곳입니다.

천불천탑의 입구에서 바위와 돌로 쌓은 엄청나게 많은 탑들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보면, 마지막으로는 너무도 멋있고 아름다운 탑들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주소] 경남 합천군 가회면 월계리 산88

[주차] 도로변에 있는 [천불돌탑 안내판]에서 천천히 300m를 운전하여 올라오면, 5-6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길따라) 문경새재 조령원터

문경새재에 있는 원은 조선시대에 공무로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던 시설이라고 합니다.

또한 조령은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많은 길손이 오가는 곳이었기 때문에 조령원터 외에도 동화원, 신혜원의 원터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편, 조선 후기에는 일반인도 원을 이용했으며 물물 교환 등 시장의 역할도 하였다고 합니다.

[주소]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932







2025년 2월 24일 월요일

(길따라) 화림동 계곡에 있는 거연정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에 있는 [거연정]은 조선후기 동지중추부사 전시서가 1640년(인조 18)에 건립한 정자이며, 2005년 10월 13일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33호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화림동 계곡]은 꽃과 나무가 무리지어 피고 자라는 계곡이란 의미인데, 화림동 계곡을 따라 흐르는 맑은 물, 빼어나고 기이한 너럭바위들, 그리고 푸른 숲이 만들어내는 계곡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다양한 모양의 정자들을 둘러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주소] 경남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길따라) 함양 학사루에서...

-무오사화의 단초를 제공한 장소-

경상남도 함양에 있는 학사루는 무오사화(조선시대 4대 사화 중에서 첫 번째 사화)의 단초를 제공한 장소였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함양에 온 경상도관찰사였던 유자광(1439~1512)은 학사루에 올라 주변 경관을 보고 시를 써 누각에 걸었는데, 이 현판은 곧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함양군수였던 김종직(1431~1492)이 [고명한 선비들의 글이 걸려 있는 곳에 어찌 유자광 같은 인물의 글을 걸어놓을 수 있는가]라며 시판을 떼고 불에 태웠던 것이다.

하지만, 김종직의 사후 6년이 지나 권력의 칼은 유자광의 손에 쥐어졌는데, 김일손이 김종직의 [조의제문, 수양 대군(세조)의 계유정난(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난하며 지은 글]을 사초에 넣은 것을 문제 삼아서 유자광은 김종직과 김일손이 대역부도를 꾀했다고 연산군(1498년 연산군 4년)에게 고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연산군은 김종직과 그의 문인들을 대역죄인으로 규정하였으며, 많은 사림들이 처형되거나 귀양을 갔다고 합니다.

[주소] 경남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길따라) 삼가 기양루 그리고 이순신 장군

삼가 기양루는 경상남도 합천군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옛날 고을 원님들의 연회장으로 쓰였던 건물이라고 합니다. 현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기양루 동편에 동헌(지방 관서에서 정무를 보던 중심 건물)터가 남아 있고 문루라고도 불렸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삼가현 관아의 문루(아래에는 출입을 하는 문을 내고, 위에는 누를 지어 사방을 두루 살피는 기능을 가진 건물)였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한편, 합천군 삼가면은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에 들어가는 구간으로 백의종군 명을 받아 정유연(1597년) 4월 4일에 한양을 출발하여 천안과 구례를 거쳐 6월 2일에 이곳에 도착했었는데, 장맛비가 많이 내려서 이틀을 이곳 삼가현 관사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주소] 경남 합천군 삼가면 금리






2025년 2월 23일 일요일

(길따라) 담양 이태석 신부님의 묘지

영화 [울지마 톤즈], [울지마 톤즈 2 : 슈크란 바바], [부활]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이태석 신부의 묘지를 2010년 12월에 처음 방문한 이후 2018년에는 부산에 있는 이태석 신부의 생가를 방문했었는데, 이번에 다시 이태석 신부님을 뵙고 싶어서 [천주교공원묘원]을 방문했습니다.

의사로서 그리고 신부로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너무도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았던 그 분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고 또한 닮고 싶어서, 이태석 신부님의 묘지에 잠시 앉아서 그 분의 삶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주소] 전남 담양군 월산면 월광로 512







(길따라) 함양 동호정을 찾아서...

-선조를 등에 업고 피난 간 장만리-

임진왜란 때 선조의 의주 몽진을 도와 공을 세운 동호 장만리를 기리기 위하여 1895년에 건립한 정자라고 하며, 2005년 10월 13일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동호 장만리는 임진왜란 때 선조를 모시고 피난했는데, 왜적을 만나자 선조를 등에 업고 수십 리를 달아나 화를 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동호정은 함양군 안의면에서 26번 국도를 따라 전주방향으로 7km 정도의 거리에 국도와 연접하여 위치하고 있으며, 동호정은 남강천 담소중의 하나인 옥녀담에 있으며 화림동 계곡의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합니다.

[주소] 경남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 842






(길따라) 정약전과 정약용의 마지막 이별

-[나주 율정삼거리 주막집]을 찾아-

요즈음 상영하고 있는 영화 [자산어보]로 인해 정약전과 정약용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들의 생애 마지막 흔적을 찾아 보았습니다.

신유박해(순조 1년인 1801년에 천주교도를 박해한 사건)로 인해 유배길에 오른 정약용과 그의 형 정약전은 1801년 11월 21일에 생애 마지막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나주읍 북쪽 5리에 있었다는 밤남정의 주막집 [율정점]에 당도했다고 합니다.

그날을 마지막으로 11월 22일에 정약용은 강진으로 그리고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떠났고 그렇게 헤어진 뒤에 16년 만에 정약전은 흑산도 유배지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정약용은 18년 동안의 긴 강진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인 경기도 광주군 마현으로 돌아온 것은 1818년 가을이며 그의 나이 57세 때였습니다. 57세에 해배되어 1836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고향인 마현에서 자신의 학문을 마무리하여 실학사상을 집대성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정약전과 정약용의 이별 장소를 찾아보면 아래 2곳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지도를 활용하여 찾아보면 바로 인근지역입니다. 또한 현재 이곳에는 [율정교차로]가 있는데, 오래 전에는 [율정 삼거리]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주소] 전남 나주시 대호동 984-3

[주소] 전남 나주시 대호동 450-9








2025년 2월 22일 토요일

(길따라) 우암 송시열 사적지를 찾아서...

-장희빈 아들의 세자 책봉을 반대-

송시열(1607년-1689년)은 충청도 옥천군에서 태어났으며, 효종(1619-1659) 때에는 이조판서에 임명되어 왕의 절대적 신임 속에 북벌 계획의 중심 인물로 활약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숙종(1661∼1720) 때인 1689년 1월에 장희빈의 아들(후일의 경종, 1688-1724)을 세자 책봉에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가 제주도로 유배되었으며, 그 해 6월에 서울로 압송되어 오던 중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고 합니다.

한편, 송시열 사적지에는 [남간정사]와 [기국정]의 건물이 있습니다.

(1) 남간정사: 조선 후기의 유학자 송시열이 제자들을 가르쳤던 건물이며,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2) 기국정: 조선 효종 5년(1654)에 우암 송시열 선생이 벼슬을 사양하고 소제동에 와 있으면서 소제방죽을 쌓고 그 연못가에 세운 건물입니다. 구기자와 국화의 무성함을 보고 건물이름을 기국정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주소]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 65번지